| 답: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과 초대 교회는 주일의 첫날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념으로 거룩히 지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제자들이 제 칠 일 안식일을 지켰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행 13:14,42,44; 17:2,3; 18:1-4; 히 4:4-8). 실제로 주일의 첫날은 신약 성경 가운데 단지 여덟 번 언급되어 있는데 그중 다섯 번은 동일한 날을 언급하고 있다. 주일 중 첫날을 언급하는 성경 절들은 다음과 같다.
2) 마가복음 16:2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마가복음 16:9 -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4) 누가복음 24:1 -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5) 요한복음 20:1 -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그러나 이 성경 구절들은 모두 예수께서 주일의 첫날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구절에도 그날에 예배드리라는 암시가 없다. 사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따랐던 사람들은 주일의 첫날을 예배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눅 23:5)고 난 후 첫 번째 날에 돌아가신 주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왔던 것이다. 이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세 가지 성경 구절에 대해서 자세히 검토해 보기로 하자.
6) 요한복음 20:19 -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이 주일의 첫날에 모였다고 이 구절이 가르치고 있는가? 그렇다. 그들은 모였었다. 그러나 질문의 요점은 이것이다. 왜 그들이 모였는가? 그들이 함께 모인 목적이 무엇인가?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였다. 그들의 모든 희망들은 사라졌다. 공포와 의심이 그들 앞에 태산처럼 가로막았다. 성경은 그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였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문을 잠근 이유였다. 그들은 단지 두려워서 모였을 뿐이지 주일 중 첫날에 정기적으로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다.
7) 고린도전서 16:2 -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어떤 사람들은 이 성경 절을 지목하면서 사도 바울이 주일의 첫날에 교회에서 연보 드리라고 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일요일 예배를 지지하기 위해 이 성경 구절을 이용한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과 문맥을 잘 분석해 보면 그와 다르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의 궁핍한 신자들을 위하여 특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3절). 그래서 그는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주일의 첫날에 예루살렘 신자들을 위하여 그들의 수입의 일정한 부분을 따로 떼어 미리 저축해 놓을 것을 제안하였다. 바울이 도착한 다음에 헌금을 거두지 않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매주 재정의 일부를 떼어서 미리 모아 놓으면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려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 절을 가지고 일요일 예배를 지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8) 사도행전 20:7 -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이 성경 구절이 신약 성경 가운데 주일의 첫날에 있었던 집회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는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기 때문에 종교 집회가 소집되었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바울은 신자들로 하여금 주일의 첫날 어두운 때(dark part)에 저녁 집회로 신자들을 모이도록 소집하였다. 그래서 새 영어 성경(New English Bible)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토요일 밤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위의 집회는 주일 첫날의 밤중에 있었다. 성경에서 하루의 시간은 해질 때 시작되어 해질 때 끝이 난다. 그러므로 안식 후 첫날은 토요일 저녁에 시작된다. 신자들은 자주 함께 성만찬을 기념하였다(행 2:42-46). 그리스도의 희생의 상징은 그들에게 전부를 의미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떠나기 전에 다시 성만찬을 기념한 것이다. 사도행전 20:11-14에 의하면 바울은 첫날의 낮 시간을 앗소로 여행하는 데 바쳤다. 그가 그날에 아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성경 어디에도 일요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한 곳이 없으며 제자들이 일요일을 지켰다는 증거 역시 없다.
| 답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계 1:10)라는 말씀을 보고 “주의 날”에 사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함을 받아 계시를 보았으니 일요일의 신성성이 증명되었다면서 일요일을 구별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계시록에 나오는 “주의 날”은 오늘날 무슨 날일까? 일요일을 주의 날(Lord's Day)로 부른 기록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때보다 훨씬 나중인 2세기 말엽의 위경서인 “베드로의 복음서”에서 최초로 안식 후 첫날을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의미로 이교도의 용어인 주일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그후에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였던 클레멘트(Clement, AD 160-250년)와` 라틴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AD 155-225)도 쓴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계시록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주의 날이 일요일로 불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면 신약 성경에서 “주의 날”은 어느 날일까?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는 말씀처럼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 날”은 안식일이었다.
| 답 : 예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금요일을 예배일로 거룩하게 구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일요일에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그날을 예배일로 거룩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두 가지 표상인 성만찬 예식과 침례를 특별히 주셨다. 성만찬 예식은 금요일 저녁에 일어났던 그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은 오해할 여지가 없는 분명한 말이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쪼개진 빵과 발효되지 않은 순수한 포도즙은 각각 주님의 찢긴 몸과 흘리신 피를 대표하는 성만찬 예식의 부분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성만찬 예식을 통하여 당신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에서 일어난 주님의 부활은 침례로써 기념한다. 로마서 6장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확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4,5)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서 무덤에 들어가시고 새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같이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인 것이다. 죄된 옛 생애를 포기함으로써 옛 자아가 죽는다. 침례로 물 무덤에 장사된 신자는 새 생명으로 부활한다. 우리는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신약 성경은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 답 : 신약 성경을 읽어 보면, 십자가로 폐지된 법이 분명히 있다. 에베소서 2:15에는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의 육체로 폐하셨으니”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이 성경 구절을 보고 십자가에 의해서 율법이 폐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태복음 5:17,18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며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말은 무엇이고,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절대로 폐지될 수 없다는 말은 무엇일까? 율법에는 십자가에 의해서 폐지될 수밖에 없는 율법이 있고, 또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는 율법이 있다. `
제사법은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의 예표로서 양을 잡는 데 필요한 법이었으므로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는 그 용도가 폐지되었다. 이 폐지된 법은 제사 지내는 의문의 율법이라든지 절기에 관한 법들이다. 제사나 의문의 율법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그림자이기 때문에 원형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구속 사업을 완성하시자 분명히 폐지되었다(골 2:14). 십자가에서 “의문(儀文)”(DOGMA, 규례, 규칙)에 속한 계명인 제사법은 폐지된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도덕법인 십계명은 폐하신 적이 없고, 십계명에 속하는 안식일 계명 또한 폐하지 않았다. 안식일은 십계명 중의 넷째 계명이다. 도덕법인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것처럼 폐지될 수 없는 것이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장로교회 웨스트민스트 신앙 고백도 십계명은 세상 끝 날까지 폐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영구적인 명령을 발하여,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정하여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게 하셨다. 성경에는 이날이 주의 날로 불리고 있다. 이날은 세상 끝 날까지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제21장)
| 답 : 에베소서 2:15에는 의문에 속한 율법은 폐해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린도후서 3:7에는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십계명도 돌에 쓰인 의문의 율법이니 폐지된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베소서 2:15에 나오는 “의문에 속한 율법”에서 “의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도그마(교조, 교리)”이고, 고린도후서 3:7에 나오는 “의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그람마(글자)”로서 서로 다른 단어인데, 한국어로는 동일한 단어인 “의문”으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혼돈이 생긴 것이다.
고린도후서 3:7에서는 “의문의 율법”이 아니고 “의문의 직분”이다. “의문의 직분”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글자의 역할” 또는 “문자의 하는 일” 등이다. 이 말씀처럼 십계명의 문자의 역할은 죄를 드러내어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그것이 십계명의 역할이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 내는 것은 십계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3:7의 정확한 의미는 “돌비에 새겨진 죽게 하는 글자의 역할도 영광이 있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십계명 문자의 어떤 기능과 역할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십계명이 그 본질상 제사 제도법같이 폐하여질 “의문(도그마)의 율법”이란 말이 아니다.
| 답 : 성경에는 두 종류의 다른 안식일이 나오는데 한 종류는 영원불변한 제 칠 일 안식일이고, 다른 한 종류는 십자가에 의해서 폐하여진 절기 안식일이다. 다음의 성경 절을 함께 읽어 보자.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레 23:37,38). 여기서 “여호와의 안식일”로 나오는 안식일은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제 칠 일 안식일을 말한다(토요일). 그리고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여호와의 절기”로 나오는 안식일들은 제사법 속에 들어 있는 7대 명절인 절기 안식일들이다.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7대 절기 안식일들은 다음과 같다.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골 2:16)이란 표현에서 절기 안식일은 절기 속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안식일은 제 칠 일 안식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 칠 일 안식일은 절기와 함께 나오지 않고 “여호와의 안식일”로 표시된다(레 23:3). 이 말씀의 확실한 의미를 알기 위하여 골로새서 2:16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갈라디아서 4:10,11을 살펴 보아야 한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골로새서 2:16에 나오는 안식일에 해당되는 것을 갈라디아에서는 “날들”이라고 쓰고 있고 원어도 복수로 되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날들(헤메라)”이다. “날들”이란 말이 과연 제 칠 일 안식일을 의미할까? 성경에서는 제 칠 일 안식일을 말하면서 “날”이란 헬라어 헤메라를 사용하지 않으며 더구나 복수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날들이란 절기 안식일이 틀림없다. 따라서 갈라디아 4:10,11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골로새서 2:16의 안식일도 절기 안식일이다. 또한 골로새서 2장은 절기와 의문의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제 칠 일 안식일에 대한 언급이 아닌 것이다. 또한 바울이 제 칠 일 안식일 안식일이 그림자이며 십자가로 폐했다고 주장했다면 엄청난 충격과 저항에 부딪쳤을 텐데 성경에는 안식일에 대해서 어떤 반박이나 충격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골로새서 2:16에 나오는 안식일은 영원한 여호와의 안식일이 아니고 절기와 월삭 등과 같은 제사법 속에 있는 절기 안식일이다. 십자가 이후에는 제사법과 관련된 의문의 율법이 폐했으므로, 이 절기 안식일들은 모두 폐해진 것들이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인 여호와의 안식일은 절대로 폐지될 수 없는 법이지만, 제사법 속에 있는 절기 안식일들은 십자가로 폐지되었으므로 더 이상 폄론할 필요가 없다고 기록한 것이다.
| 답 : 본문의 문맥을 보면 여기의 날짜는 안식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먹는 것과 관련되어 나오는 유대인의 금식하는 날짜 문제이다. 유대인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을 금식하는 날로 정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유대인의 관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니 그날을 다른 날보다 더 낫게 여길 것인지 안 여길 것인지는 자기 마음대로 확정해도 구원에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십자가로 폐지된 절기나 유대인의 율법적인 날은 더 이상 중요하게 구별할 필요가 없다.
| 답 : 갈라디아서 5:6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하는 역사는 믿음뿐이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제시하면서 “믿음만 있으면 되지 안식일 같은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할례 제도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유대인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표시로 할례를 받아야만 했다.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으니”(행 7:8). 그러므로 혈통적인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의해서 더 이상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분명한 기록이 신약 성경에 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 7:19). 그러나 안식일 제도는 온 인류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으로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통하여 주신 것이다.
“믿음뿐이니라”(갈 5:6),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 7:19), 이 두 구절은 진리의 양면성을 보여 주고 있다. 첫째 면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외형적인 표식이나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라는 말씀처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고 그의 뜻대로 살고 싶어서 그의 계명을 즐겨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대한 참된 빛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명 중에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도 즐겨 지키게 된다.
| 답 : 여기에 나오는 율법과 선지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4,45)에서 보듯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은 신약 성경이 쓰이기 전에 구약 성경의 명칭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는 말은 구약 성경은 침례 요한의 때까지라는 뜻이다. 즉 침례 요한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 성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가 되겠다는 말이다.
| 답 : 예수께서는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고 오셨다. 그는 율법의 위엄성을 감소시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높이셨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축복은커녕 저주가 되게 만든 이 무거운 짐이 되는 요구 사항들로부터 안식일을 자유롭게 하시려 오셨다. 예수께서는 주일 중 다른 날에도 마찬가지로 병자를 고치실 수도 있으셨을 것이며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에게도 자리를 가지고 가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단순히 고치기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 하지 않으시고, 안식일에 그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질문이 일어나게 하셔서 안식일에 관한 유대인들의 금령(禁令)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의 유전들이 무용하다고 선언하셨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선언하셨다.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날들 동안에 인류를 위하여 당신의 계획들을 수행하신다. 천연계는 변함이 없는 과정을 계속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잠시라도 당신의 손을 멈추실 수가 없는데 만일 멈추신다면 인간은 기절하여 죽을 것이다. 사람도 또한 이날에 행해야 할 일이 있다. 생활에 불가결한 일은 행해져야 하며 병자는 돌보아야 하며 곤핍한 자들의 필요는 공급해 주어야 한다. 안식일에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하기를 게을리하는 자에게 죄 없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자비로운 행위는 안식일의 의도와 완전히 조화된다.
하나님께 대한 요구는 다른 날에보다 안식일에 한층 더 크다. 그러므로 평시의 작업을 떠나서 명상과 예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다른 날보다도 안식일에 더욱 많은 은총을 하나님께 간구하며,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시기를 요구하고, 가장 훌륭한 축복을 갈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 사항들을 들어주시기 전에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으신다.
하늘의 사업은 결코 중단되지 않으므로 사람들도 선한 일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쓸모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되도록 의도되지 않았다. 율법은 주의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을 금지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은 중지해야 한다. 세속적인 향락이나 이익을 위한 노동은 그날에는 적법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하시는 역사를 쉬시고 안식일에 안식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사람도 그의 일상 생애의 일에서 떠나서 이 거룩한 시간을 건전한 안식과 예배와 거룩한 행위를 위하여 바쳐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신 사업은 율법에 완전히 일치했다. 그 행위는 안식일을 존귀하게 했다.




